
표지로 끝나는 게 아니다
표지를 꾸미는 게 북디자인 전부는 아니다. 이제 내지를 디자인할 차례다. 표지와 내지 디자인 중에서 어떤 게 더 중요할까? 라는 궁금증은 필요 없다. 정확히 50대 50이다.
일단 본문을 구성하는 폰트의 크기부터 정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빈번하게 갈등이 발생한다. 노안을 핑계로 폰트를 더 키워 달라는 주문을 몇 번씩 반복하면 공공기관의 공문서 만큼 커지기도 한다. 이해한다. 작은 글자는 안 보이는 나이가 되셨으니 그럴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글 문서의 기본 크기인 10포인트 이상은 금물이다. 글줄과 글줄 사이의 공간은 글자 크기의 50% 이하는 안 된다. 이건 그냥 외워두시기 바란다.
안 보이면 안경을 끼시고, 디자이너에게 산돌 명조 기준, 폰트 크기 9.7포인트, 행간 18포인트,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을 말하는 자간은 마이너스 20을 외쳐보자. 디자이너가 공손해 질 확률이 90% 이상이다.
표지 디자인은 미적 영역, 내지 디자인은 과학의 영역이다
가로 15cm, 세로 20cm 정도의 종이에 글만 빽빽할 뿐인데, 무슨 디자인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분이 여기에 있을까? 에이, 사람 뭐로 보고, 그런 분이 계시겠냐고.
가장 이상적인 글줄의 길이는 10cm 정도이다. 글줄이 더 길어지면, 헷갈려서 시선이 아랫줄이나 윗줄로 옮겨갈 수 있다.
디자이너는 단순하게 글자를 지면에 배치하는 게 아니다.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심어둔다. 글자의 크기, 간격, 글줄의 길이와 간격을 적절하게 정해서 가독성을 높인다.
여기에 여백을 확보한다. 본문의 좌우로 2cm 정도, 상단은 2cm, 하단은 3cm 내외의 공간을 확보해 둔다. 이 여백이 지나치게 좁으면 글만 가득해 보여 읽기도 전에 질린다. 그게 너무 넓으면, 책을 펼치자마자 휑한 기분이 드는데, 그런 경우 왠지 내용도 부실할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상단과 좌우 여백의 면적이 같다. 앞의 디자인에 비해 정갈한 구성이지만, 엑티브함은 부족하다. 하지만 많은 작가가 안정감 있는 이 레이아웃을 선호할 것이다. 하단은 좌우와 상단에 비해 여백을 더 많이 주는데, 쪽 번호와 책 제목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간이 좁은 경우 텍스트 상자의 무게감 때문에 실제보다 더 아래로 처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디자이너 중에 극단적으로 여백에 차이를 주는 이가 있다. 예를 들면 상단 여백을 1cm로 좁게, 하단은 4cm로 넉넉하게 구성한다. 밸런스가 맞지 않는 듯해 많은 작가가 질색하는 방식인데, 공간에 긴장감을 주거나, 풀어주는 방식으로 글자 중심의 지면이 가진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이다. 내가 디자인할 경우 이 방식을 자주 제안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지면 구성이 확실히 극단적이긴 하다.
대부분 지면 하단에 있는 쪽 번호나 책 제목 등을 상단이나, 좌우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 역시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고 개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식이다. 익숙하지 않다고 역정부터 내지 말고 디자이너에게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설득력 있는 대답이 돌아오면 수용하는 것도 좋다. “내지 디자인이 다 그렇지”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그냥요”나 “이게 예뻐서요”라는 답을 받는다면, 디자이너를 믿지 말고 수없이 서점을 다니면서 한껏 오른 자신의 디자인 감각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

극단적인 여백 구성과 챕터 제목, 쪽 번호 등을 이미지화해, 지면 곳곳에 배치한 예. 상단 여백은 9mm에 불과하지만, 하단 여백은 35mm이다. 텍스트 면과 다양한 여백의 면적으로 펼친 면을 생동감 있게 나눴다.
갈 길이 멀지만…
이 글을 읽었다고 당신의 머리가 맑아지고,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정리됐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물론 내가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전문가의 영역인 것처럼,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서점 몇 번 들렀다고 북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완벽히 정립될 리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감각은 갖춰야 하고, 그 방법은 많은 북디자인을 경험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디자이너와 원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단독주택 한 번 지은 사람은 설계자와 시공업자를 대하면서 십 년은 늙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 디자인도 그렇다. 돈 냈다고 클라이언트의 권리를 무한정 내세울 수 없는 게 이 바닥이다. 십 년은 아니라도 일 년은 늙을 수 있다. 하지만, 늙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모든 것에 정답은 없다.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유연한 자세로 많은 대화를 통해 디자이너와 함께 내 글을 담을 멋진 그릇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북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 드린다.
검색창에서 핀터레스트www.pinterest.co.kr를 입력하시면 된다.
북디자인, 표지 디자인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거나, 일본 북디자인 또는 japan book design 등 영어로 입력하면 세계 여러 나라의 책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종이에 열심히 스케치하고,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지만, 가끔 들른 핀터레스트를 둘러보며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실은 자주 들른다.-
표지로 끝나는 게 아니다
표지를 꾸미는 게 북디자인 전부는 아니다. 이제 내지를 디자인할 차례다. 표지와 내지 디자인 중에서 어떤 게 더 중요할까? 라는 궁금증은 필요 없다. 정확히 50대 50이다.
일단 본문을 구성하는 폰트의 크기부터 정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빈번하게 갈등이 발생한다. 노안을 핑계로 폰트를 더 키워 달라는 주문을 몇 번씩 반복하면 공공기관의 공문서 만큼 커지기도 한다. 이해한다. 작은 글자는 안 보이는 나이가 되셨으니 그럴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글 문서의 기본 크기인 10포인트 이상은 금물이다. 글줄과 글줄 사이의 공간은 글자 크기의 50% 이하는 안 된다. 이건 그냥 외워두시기 바란다.
안 보이면 안경을 끼시고, 디자이너에게 산돌 명조 기준, 폰트 크기 9.7포인트, 행간 18포인트,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을 말하는 자간은 마이너스 20을 외쳐보자. 디자이너가 공손해 질 확률이 90% 이상이다.
표지 디자인은 미적 영역, 내지 디자인은 과학의 영역이다
가로 15cm, 세로 20cm 정도의 종이에 글만 빽빽할 뿐인데, 무슨 디자인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분이 여기에 있을까? 에이, 사람 뭐로 보고, 그런 분이 계시겠냐고.
가장 이상적인 글줄의 길이는 10cm 정도이다. 글줄이 더 길어지면, 헷갈려서 시선이 아랫줄이나 윗줄로 옮겨갈 수 있다.
디자이너는 단순하게 글자를 지면에 배치하는 게 아니다. 글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심어둔다. 글자의 크기, 간격, 글줄의 길이와 간격을 적절하게 정해서 가독성을 높인다.
여기에 여백을 확보한다. 본문의 좌우로 2cm 정도, 상단은 2cm, 하단은 3cm 내외의 공간을 확보해 둔다. 이 여백이 지나치게 좁으면 글만 가득해 보여 읽기도 전에 질린다. 그게 너무 넓으면, 책을 펼치자마자 휑한 기분이 드는데, 그런 경우 왠지 내용도 부실할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상단과 좌우 여백의 면적이 같다. 앞의 디자인에 비해 정갈한 구성이지만, 엑티브함은 부족하다. 하지만 많은 작가가 안정감 있는 이 레이아웃을 선호할 것이다. 하단은 좌우와 상단에 비해 여백을 더 많이 주는데, 쪽 번호와 책 제목이 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간이 좁은 경우 텍스트 상자의 무게감 때문에 실제보다 더 아래로 처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디자이너 중에 극단적으로 여백에 차이를 주는 이가 있다. 예를 들면 상단 여백을 1cm로 좁게, 하단은 4cm로 넉넉하게 구성한다. 밸런스가 맞지 않는 듯해 많은 작가가 질색하는 방식인데, 공간에 긴장감을 주거나, 풀어주는 방식으로 글자 중심의 지면이 가진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이다. 내가 디자인할 경우 이 방식을 자주 제안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지면 구성이 확실히 극단적이긴 하다.
대부분 지면 하단에 있는 쪽 번호나 책 제목 등을 상단이나, 좌우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 역시 단조로움에서 탈피하고 개성을 부여하기 위한 방식이다. 익숙하지 않다고 역정부터 내지 말고 디자이너에게 의도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설득력 있는 대답이 돌아오면 수용하는 것도 좋다. “내지 디자인이 다 그렇지”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그냥요”나 “이게 예뻐서요”라는 답을 받는다면, 디자이너를 믿지 말고 수없이 서점을 다니면서 한껏 오른 자신의 디자인 감각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
극단적인 여백 구성과 챕터 제목, 쪽 번호 등을 이미지화해, 지면 곳곳에 배치한 예. 상단 여백은 9mm에 불과하지만, 하단 여백은 35mm이다. 텍스트 면과 다양한 여백의 면적으로 펼친 면을 생동감 있게 나눴다.
갈 길이 멀지만…
이 글을 읽었다고 당신의 머리가 맑아지고,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인지 정리됐을 확률은 지극히 낮다.
물론 내가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이 전문가의 영역인 것처럼,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서점 몇 번 들렀다고 북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완벽히 정립될 리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감각은 갖춰야 하고, 그 방법은 많은 북디자인을 경험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디자이너와 원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단독주택 한 번 지은 사람은 설계자와 시공업자를 대하면서 십 년은 늙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 디자인도 그렇다. 돈 냈다고 클라이언트의 권리를 무한정 내세울 수 없는 게 이 바닥이다. 십 년은 아니라도 일 년은 늙을 수 있다. 하지만, 늙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모든 것에 정답은 없다.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유연한 자세로 많은 대화를 통해 디자이너와 함께 내 글을 담을 멋진 그릇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 나라의 다양한 북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 드린다.
검색창에서 핀터레스트www.pinterest.co.kr를 입력하시면 된다.
북디자인, 표지 디자인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거나, 일본 북디자인 또는 japan book design 등 영어로 입력하면 세계 여러 나라의 책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종이에 열심히 스케치하고, 머리카락 쥐어뜯으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지만, 가끔 들른 핀터레스트를 둘러보며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실은 자주 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