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고 돌아 다시 첫문장입니다. 첫문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독자가 처음으로 읽는 문장이고, 글의 첫인상을 좌우하며, 이 글을 끝까지 읽을지 말지 결정하게 만드는 문장이니까요. 그렇다고 부담감에 움츠러들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으로 쓰는 문장과 완성된 글의 첫문장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자를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첫문장이 아니에요.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가장 먼저 놓일 문장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문장들을 불러올 수 있는 문장이 필요해요.
그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부끄러운 비밀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반사회적이어서 상상만 해도 두려워지는 생각일 수도, 아무 의미없는 넌센스일 수도 있으며,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처럼 상투적인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그것이 우리를 다음 문장으로 떠밀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수정은 나중에 돌아와서 하면 돼요—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최대한 밀쳐두세요. 재수없는 내면의 비평가는 입도 벙긋 못하게 묶어둬야 한다는 말을 제가 했던가요?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는 일단 시작한 글을 계속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A)하고 싶은 말을 아끼지 말자
늘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떤 분은, 그리고 어떤 주제는, 미괄식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요. 하고 싶은 말을 맨 마지막으로 미뤄둔 경우, 정해진 결론을 향해 차곡차곡 블록을 맞추듯 빌드업을 해야 하죠. 그런데 그런 글은 종종 쓰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해요.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 글을 읽는 게 지루한 것처럼, 다 아는 이야기를 향해 가려니 지겨울 수밖에 없죠. 그럴 땐 반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다 해버리고 한 문장씩 더듬더듬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러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같은 자리를 맴돌 수도 있고 멀리 돌아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초고는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요.
B)말하듯이 쓰자
문어체로 글을 쓰는 게 영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날 나도 모르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움츠러드는 것처럼 내가 쓰는 문장이 낯설어서 좀처럼 쓰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써보세요. 어제 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건 어렵지만 친구를 만나서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그렇지 않잖아요. 문체나 분위기나 구성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빠르게 풀어놓는 방법이에요. 물론 엉망이겠죠. 하지만 초고는 그러라고 있는 거라니까요?
C)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자
보통 인용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위를 빌려오는 거라고 하는데요. 혹은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인용할 수도 있고요. 학술적인 글이나 논설문이라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에세이에서는 (위와 같은 경우가 없다는 게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나 심미적인 이유에서 인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커요.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했고, 심지어 더 잘했다면 그것을 인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표현만 다르게 해서 내 말처럼 쓰는 것보다는 그냥 인용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것을 딛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뉴턴의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이것이 실용적인 이유라면 심미적인 이유는 훨씬 심플합니다. 그 문장을 좋아해서 내 글에 넣고 싶은 거예요. 내 방에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넣고 싶은 것처럼요. 굳이 말하자면 인용을 위한 인용이라고 할까요? 물론 영 뜬금없는 내용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굳이 여기에 그것을 넣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설령 아무 연관 없는 내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인용하면 맥락은 새롭게 생겨나니까요—심지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뭐 어떤가요?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내 글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데.
D)다른 일을 하자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혹은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세요. 잠시 쉬면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보고 듣는 게 더 낫습니다.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하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 수도 있고요. 술을 마셔도 괜찮아요—취하면 글이 더 잘 써질 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지 않는다면요. 중요한 건 너무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배우 구교환 씨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안 하는 것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스트레스 받고 고민하고 있는 시간도 작업하는 시간이에요. 해야 되는데 하고 외면하는 것도 하고 있는 거예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스스로에게 조금쯤 너그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건 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E)AI에게 도움을 청하자
여러분, 지금은 2024년입니다. AI가 대신 글을 써준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라는 뜻이에요. 아쉽게도 아직 작가를 대체할 정도는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글쓰기가 막힐 때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AI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만약 더 쓸 수 없다면 지금까지 쓴 글을 AI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친구와 수다를 떨 듯 AI와 대화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출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꼭 AI가 대단한 조언을 해줘서라기보단 내가 쓴 글을 놓고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죠.
물론 AI의 제안을 무조건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AI가 조언해준 것을 그대로 쓰는 일에는 약간 복잡한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밝히거나, 내가 쓴 글과 조금 다른 레이어에서 보여주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요: 이 항목은 초고를 읽고 “개인적으로는 AI와의 협업 가능성 같은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라는 의견을 건넨 클로드의 조언에 따라 추가 되었습니다. 내용 또한 클로드의 도움을 받았지만 뼈대만 남긴 채 모든 문장을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사진: Unsplash의Björn Antonissen
F)루틴을 만들자
하지만 언젠가 다시 책상 앞에 돌아와 앉아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막막함과 두려움을 마주보아야 하는 순간. 멀리 도망가고 싶고, 두 번 다시 글따위 쓰지 않겠다고 울면서 맹세를 하고픈 순간입니다. 실제로 여기서 포기하고 영영 글을 쓰지 않을 수도 있어요—그것 또한 하나의 선택이며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만약 계속해서 쓰고 싶다면, 루틴에 의지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5분 동안 집중하고 5분 동안 쉬는 뽀모도로 어플을 다운 받으세요. 컴퓨터 앞에 앉아 뽀모도로 어플을 실행하고 25분 동안 모니터를 노려보세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은 하지 마세요.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5분 동안 스트레칭도 하고 물도 마시면서 쉬세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세요. 막막함을 25분 단위로 쪼개서 만만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어느 순간 ‘어차피 25분인데, 다 지운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써봐?’ 같은 생각이 들면 성공입니다. 아니라면 25분 동안 모니터를 노려본 다음, 내일 다시 도전하세요. 그렇게 매일 2~4뽀모도로를 하세요. 글이 조금씩 써지기 시작한다면 사정에 따라 뽀모도로를 늘릴 수도 있지만 너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다 보면, 축하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6. 끝내기, 쉬기, 퇴고하기, 진짜 끝내기
어떠세요? 잘 따라 오고 계신가요? 그 말씀을 드린다는 걸 잊었네요. 초고를 쓰는 동안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에 쓴 부분은 읽지 않는 게 좋습니다. 오르페우스를 생각해보세요. 죽은 에우리디케를 되살리기 위해 명계로 찾아가 아름다운 리라 연주로 페르세포네를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단, 지상에 나갈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지요.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순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그리고 에우리디케는 명계로 끌려가죠. 음, 너무 과장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게 예술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봐야만 하는 순간이 있고, 반대로 아무리 돌아보고 싶어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초고를 마친 지금이 바로 돌아봐야 하는 순간입니다. 아, 그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세요.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고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있던 물건을 사는 것도 좋겠네요. 며칠 동안 초고는 잊으세요. 그런 다음, 적당한 순간에 그것을 꺼내 마치 남이 쓴 글처럼 읽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겠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부분도 있고 내가 이런 문장을 썼어? 새삼 놀라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부족한 부분도 있고 지나치다 싶은 부분도 있을 테고요. 수정하지 않은 이대로가 마음에 드시나요? 잘 됐네요. 순서를 바꾸고 어떤 부분을 더 추가하고 싶다고요? 그게 바로 퇴고가 하는 일이죠. 몇 문장만 남기고 싹 다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시나요? 괜찮습니다. 훨씬 좋은 글이 나올 테고, 그 과정은 초고보다 훨씬 수월할 테니까요. 좋아요, 저보다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죠. 마음껏 하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고, 그것을 더 낫게 만드는 것도 오직 여러분께 달린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드린다면, 퇴고를 할 때는 대개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는 빼는 게 더 낫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참고로 이번에는 클로드의 조언을 따라 다음과 같은 끝인사를 추가하기로 했습니다(클로드가 써준 인사말을 고스란히 따옴표 안에 넣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쓰기는 때로 외로운 작업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책을 읽고,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과 대화하며 우리는 글 속에서 타인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납니다. 우리가 마주한 날씨가 때로는 맑고 때로는 흐린 것처럼, 글쓰기의 과정 또한 순탄치만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서로 연결해준다는 걸 잊지 마세요.
지금 창밖의 날씨는 어떤가요? 비가 내리나요, 햇살이 비치나요? 우리의 마음속에도 다양한 날씨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 날씨를 글로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내면의 풍경을 言語의 색으로 그려보세요. 지금 바로, 첫 문장을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네요."
돌고 돌아 다시 첫문장입니다. 첫문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독자가 처음으로 읽는 문장이고, 글의 첫인상을 좌우하며, 이 글을 끝까지 읽을지 말지 결정하게 만드는 문장이니까요. 그렇다고 부담감에 움츠러들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으로 쓰는 문장과 완성된 글의 첫문장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자를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첫문장이 아니에요.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가장 먼저 놓일 문장입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문장들을 불러올 수 있는 문장이 필요해요.
그건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부끄러운 비밀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반사회적이어서 상상만 해도 두려워지는 생각일 수도, 아무 의미없는 넌센스일 수도 있으며,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처럼 상투적인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그것이 우리를 다음 문장으로 떠밀어주기만 한다면 그것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수정은 나중에 돌아와서 하면 돼요—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최대한 밀쳐두세요. 재수없는 내면의 비평가는 입도 벙긋 못하게 묶어둬야 한다는 말을 제가 했던가요?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는 일단 시작한 글을 계속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A)하고 싶은 말을 아끼지 말자
늘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떤 분은, 그리고 어떤 주제는, 미괄식에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요. 하고 싶은 말을 맨 마지막으로 미뤄둔 경우, 정해진 결론을 향해 차곡차곡 블록을 맞추듯 빌드업을 해야 하죠. 그런데 그런 글은 종종 쓰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해요.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 글을 읽는 게 지루한 것처럼, 다 아는 이야기를 향해 가려니 지겨울 수밖에 없죠. 그럴 땐 반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다 해버리고 한 문장씩 더듬더듬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나아가는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러다 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같은 자리를 맴돌 수도 있고 멀리 돌아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초고는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요.
B)말하듯이 쓰자
문어체로 글을 쓰는 게 영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날 나도 모르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움츠러드는 것처럼 내가 쓰는 문장이 낯설어서 좀처럼 쓰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써보세요. 어제 본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건 어렵지만 친구를 만나서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그렇지 않잖아요. 문체나 분위기나 구성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빠르게 풀어놓는 방법이에요. 물론 엉망이겠죠. 하지만 초고는 그러라고 있는 거라니까요?
C)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자
보통 인용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위를 빌려오는 거라고 하는데요. 혹은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인용할 수도 있고요. 학술적인 글이나 논설문이라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에세이에서는 (위와 같은 경우가 없다는 게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나 심미적인 이유에서 인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커요. 생각해보세요. 누군가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했고, 심지어 더 잘했다면 그것을 인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표현만 다르게 해서 내 말처럼 쓰는 것보다는 그냥 인용을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것을 딛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뉴턴의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이것이 실용적인 이유라면 심미적인 이유는 훨씬 심플합니다. 그 문장을 좋아해서 내 글에 넣고 싶은 거예요. 내 방에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넣고 싶은 것처럼요. 굳이 말하자면 인용을 위한 인용이라고 할까요? 물론 영 뜬금없는 내용은 아니겠죠. 그렇다면 굳이 여기에 그것을 넣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설령 아무 연관 없는 내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인용하면 맥락은 새롭게 생겨나니까요—심지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뭐 어떤가요?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내 글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데.
D)다른 일을 하자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혹은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세요. 잠시 쉬면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보고 듣는 게 더 낫습니다.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하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 수도 있고요. 술을 마셔도 괜찮아요—취하면 글이 더 잘 써질 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지 않는다면요. 중요한 건 너무 자책하거나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배우 구교환 씨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안 하는 것도 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스트레스 받고 고민하고 있는 시간도 작업하는 시간이에요. 해야 되는데 하고 외면하는 것도 하고 있는 거예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스스로에게 조금쯤 너그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건 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E)AI에게 도움을 청하자
여러분, 지금은 2024년입니다. AI가 대신 글을 써준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라는 뜻이에요. 아쉽게도 아직 작가를 대체할 정도는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글쓰기가 막힐 때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AI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만약 더 쓸 수 없다면 지금까지 쓴 글을 AI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보세요. 친구와 수다를 떨 듯 AI와 대화를 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출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꼭 AI가 대단한 조언을 해줘서라기보단 내가 쓴 글을 놓고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죠.
물론 AI의 제안을 무조건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AI가 조언해준 것을 그대로 쓰는 일에는 약간 복잡한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만 AI의 도움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밝히거나, 내가 쓴 글과 조금 다른 레이어에서 보여주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요: 이 항목은 초고를 읽고 “개인적으로는 AI와의 협업 가능성 같은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네요”라는 의견을 건넨 클로드의 조언에 따라 추가 되었습니다. 내용 또한 클로드의 도움을 받았지만 뼈대만 남긴 채 모든 문장을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사진: Unsplash의Björn Antonissen
F)루틴을 만들자
하지만 언젠가 다시 책상 앞에 돌아와 앉아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막막함과 두려움을 마주보아야 하는 순간. 멀리 도망가고 싶고, 두 번 다시 글따위 쓰지 않겠다고 울면서 맹세를 하고픈 순간입니다. 실제로 여기서 포기하고 영영 글을 쓰지 않을 수도 있어요—그것 또한 하나의 선택이며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만약 계속해서 쓰고 싶다면, 루틴에 의지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5분 동안 집중하고 5분 동안 쉬는 뽀모도로 어플을 다운 받으세요. 컴퓨터 앞에 앉아 뽀모도로 어플을 실행하고 25분 동안 모니터를 노려보세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은 하지 마세요.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5분 동안 스트레칭도 하고 물도 마시면서 쉬세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세요. 막막함을 25분 단위로 쪼개서 만만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어느 순간 ‘어차피 25분인데, 다 지운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써봐?’ 같은 생각이 들면 성공입니다. 아니라면 25분 동안 모니터를 노려본 다음, 내일 다시 도전하세요. 그렇게 매일 2~4뽀모도로를 하세요. 글이 조금씩 써지기 시작한다면 사정에 따라 뽀모도로를 늘릴 수도 있지만 너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다 보면, 축하합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6. 끝내기, 쉬기, 퇴고하기, 진짜 끝내기
어떠세요? 잘 따라 오고 계신가요? 그 말씀을 드린다는 걸 잊었네요. 초고를 쓰는 동안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에 쓴 부분은 읽지 않는 게 좋습니다. 오르페우스를 생각해보세요. 죽은 에우리디케를 되살리기 위해 명계로 찾아가 아름다운 리라 연주로 페르세포네를 감동시킨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단, 지상에 나갈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지요.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순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그리고 에우리디케는 명계로 끌려가죠. 음, 너무 과장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게 예술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봐야만 하는 순간이 있고, 반대로 아무리 돌아보고 싶어도 돌아보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초고를 마친 지금이 바로 돌아봐야 하는 순간입니다. 아, 그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세요.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고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있던 물건을 사는 것도 좋겠네요. 며칠 동안 초고는 잊으세요. 그런 다음, 적당한 순간에 그것을 꺼내 마치 남이 쓴 글처럼 읽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겠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부분도 있고 내가 이런 문장을 썼어? 새삼 놀라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부족한 부분도 있고 지나치다 싶은 부분도 있을 테고요. 수정하지 않은 이대로가 마음에 드시나요? 잘 됐네요. 순서를 바꾸고 어떤 부분을 더 추가하고 싶다고요? 그게 바로 퇴고가 하는 일이죠. 몇 문장만 남기고 싹 다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시나요? 괜찮습니다. 훨씬 좋은 글이 나올 테고, 그 과정은 초고보다 훨씬 수월할 테니까요. 좋아요, 저보다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겠죠. 마음껏 하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것이고, 그것을 더 낫게 만드는 것도 오직 여러분께 달린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드린다면, 퇴고를 할 때는 대개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는 빼는 게 더 낫습니다. 물론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참고로 이번에는 클로드의 조언을 따라 다음과 같은 끝인사를 추가하기로 했습니다(클로드가 써준 인사말을 고스란히 따옴표 안에 넣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쓰기는 때로 외로운 작업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책을 읽고,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과 대화하며 우리는 글 속에서 타인을 만나고 나 자신을 만납니다. 우리가 마주한 날씨가 때로는 맑고 때로는 흐린 것처럼, 글쓰기의 과정 또한 순탄치만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서로 연결해준다는 걸 잊지 마세요.
지금 창밖의 날씨는 어떤가요? 비가 내리나요, 햇살이 비치나요? 우리의 마음속에도 다양한 날씨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 날씨를 글로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내면의 풍경을 言語의 색으로 그려보세요. 지금 바로, 첫 문장을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