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쓸 것, 뭐라도 쓸 것


금정연

에세이스트


이것저것 쓰는 사람.
『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아무튼, 택시』, 『담배와 영화』,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아무튼, 택시』,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을 쓰고 『문학의 기쁨』,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등을 함께 썼다.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동물농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강 어디에선가는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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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디에선가는 시작해야 한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볼까요. 일상에서 우리는 흔히 날씨 이야기를 합니다. 가벼운 인사말로, 어색한 침묵을 깨고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이걸 친교의 기능이라고 하는데요. 날씨라는 화제 자체는 별로 중요할 게 없지만 그것을 나눔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정말 날씨는 중요하지 않을까요? 설마요.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날씨야말로 삶과 기억의 본질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날씨는 우리를 소통하게 해주는 일종의 공백 상태 혹은 무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는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는 섬세한 뉘앙스가 담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작은 뉘앙스의 차이가 모든 차이를 만듭니다. 삶과 기억은 몰라도 최소한 예술은 그런 것 같아요. 바르트가 좋아하는 하이쿠에는 계절을 가리키는 단어가 꼭 들어가는데요. 바쇼의 하이쿠를 한번 볼까요.

 

겨울바람이 불어 대자

고양이들의 눈이

깜박댄다

 

쌀쌀한 ‘겨울바람’이 하이쿠 속으로 불어오며 환기되는 대체불가한 어떤 ‘뉘앙스’가 느껴지시나요?

한편 산문에서 날씨는 종종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은유로 작동합니다. 특히 소설에서는 이후에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끔 어떤 날씨는 클리섀로 쓰이기도 하죠.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라는 노래 가사처럼요.

개집 위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며 쓰는 스누피의 소설은 항상 똑같은 첫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It was a dark and stormy night.” 이어지는 내용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시작이지만 스누피는 지치지 않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립니다. 편집자가 원고를 반송하며 “제발 투고를 멈춰주세요. 제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라는 메모를 남길 정도로요.

스누피의 전매특허가 된 그 문장은 사실 영국 작가 에드워드 불러 리튼의 1830년 소설 <폴 클리포드Paul Clifford>의 첫문장입니다. 동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은 인기 소설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상투적인 첫문장의 대명사로 더 유명해진 문장을 스누피의 작가 찰스 M. 슐츠가 슬쩍한 것이지요. 그런데 상투적인 게 꼭 나쁜 걸까요?

물론 좋을 건 없겠죠. 하지만 아무리 상투적인 문장이라도 백지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요, 지금 우리에겐 읽는 사람의 입장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어요. 중요한 건 완벽한 첫걸음을 떼는 게 아니라 일단 첫걸음을 떼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이야기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거니까요. 수정은 그 다음에 돌아와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중에 보면 별로라고 생각했던 첫문장이 의외로 마음에 들 수도 있어요. 맥락 밖에 있는 문장과 맥락 속에 있는 문장은 다르니까요. 솔직히 그럴 확률은 별로 없지만,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문장에 문장을 쌓아서 맥락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일단 쓰세요. 뭐라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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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Unsplash의Hannah Olinger 



2. 쓰지 못하면 읽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시겠다고요? 그래요.

뭘 써야 좋을지 도무지 감도 오지 않으신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읽으세요. 어떤 장르나 마찬가지지만 에세이도 읽지 않고는 쓸 수 없습니다. 아주 특별한 천재가 아닌 이상은요. 혹시 내가 그런 천재라면 어떡한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로요.

 

A)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찾아 읽는다

만약 고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면 고래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어야겠죠. 동영상이나 웹문서도 찾아봐야겠지만 책을 찾아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우리가 쓰려는 건 글이고, 그것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담겨 있는 매체는 책이니까요.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 검색으로 ‘고래’를 찾아서 검색 결과를 훑어보고 읽고 싶은 책을 추린 다음 도서관에 가세요. 실제로 책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보고, 꼼꼼히 읽어야겠다 싶은 책은 대출하세요. 구입하면 더 좋고요.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느낌이나 분위기에 참고가 될 만한 책을 찾아 읽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 흉내내고 싶은 작가가 있었다면 그 작가의 책을 다시 읽어 보세요. 문장을 어떻게 만들고 나열하는지 유의하면서요. 그런 작가가 없다면? 이제부터 만들면 됩니다. 독창적인 글을 쓰고 싶은데 지나치게 영향을 받을까봐 두렵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떤 가수의 노래를 매일 듣는다고 저절로 모창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수의 테크닉을 연구하고 따라하는 것과 모창을 연습하는 것도 같지 않고요.

 

B)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래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책이나 읽으세요. 안 될 거 있나요? 쓰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읽기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너무 어려우면 어떡하지? 그럼 내가 어떤 것을 모르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는 거죠. 책이 너무 별로라서 시간을 낭비하면? 어차피 우리는 매일 시간을 낭비하며 살고 있습니다. 죽은 눈으로 유튜브를 보는 시간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책을 읽은 시간이 더 아까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좋은 책은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나쁜 책은 반면 교사가 되며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요. 그저 그런 책은?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그저 그렇다는 겸허한 사실을 일깨워주죠. 무엇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읽은 시간들이 모여 책을 판단하는 나만의 취향과 감식안을 만들어주는 것일 테고요. 장원영 님의 말씀처럼, 뭘 읽어도 완전 럭키비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