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만드는 법


이지향

스토리PD


밀리의 서재 출간기획팀장, <세계관 만드는 법> 저자.
드라마 <탐나는 도다>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각본을 썼고, 스토리 프로덕션 안전가옥에서 수석 스토리PD로 일했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의 힘을 믿으며, 이야기 안팎의 다양한 양상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3강 세계관-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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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의 주제에 맞춤 맞은 플롯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펼쳐질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판타지나 역사물처럼 현재가 아닌 시대를 그리는 이야기 뿐 아니라 현실 세계를 다룬 스토리라 할지라도 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주요 설정, 규칙 등을 포함한 세계관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이란 현실 세계와는 다른 사건·요소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fictional universe 그리고 이 세계를 구축하는 뼈대인 ‘세계 설정’worldbuilding을 뜻합니다.

위의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이야기 소재에 쉽게 적용해서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건 이야기에 ‘가정’과 ‘주요 작동 규칙’ 그리고 ‘한계’를 설정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이야기에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인공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그가 현실에 맞닥뜨린 문제점을 돌파하는 내용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이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현재 문제의 씨앗을 발견해 과거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이렇듯 세계관을 설정할 때 가정은 당연히 주인공의 욕망을 이루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해야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픽션의 세계에서 창조주인 작가가 전능한 힘으로 주인공에게 기회를 주는 세계를 빚어내는 것입니다.  

 ‘만약에...’라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아직 여전히 막막하다면, 현실 세계에서 ‘한 분야’만 바꿔보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있다면 어떨까요?(『매분구』)혹은 성별이나 인종, 나이를 바꿔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고요. 요시나가 후미의 『오오쿠』처럼 일본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여성들이 가문을 잇고 쇼군에 오르거나, 라이언 존슨 감독의 영화 『브릭』처럼 범죄와 마약 등의 어두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우유를 마시며 진지하게 논의할 수도 있고요. 캐릭터의 내적 가치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현대에는 악인으로 알려진 동화 혹은 역사 속 인물이 사실 선인이었다면? 그런데 현대에 악인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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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Unsplash의Jaco Pretorius 


 다시 타임리프 가정으로 돌아가 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었다면 이 세계의 주요 작동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모두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몇몇 특별한 사람만 갈 수 있는지, 사람 간 차이가 아니라 특별한 물건을 사용하거나 방법을 익히면 갈 수 있는 것인지, 이 세계에서 시간 여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세계 내부에서도 알고 있는 것인지 소수의 비밀인지, 과거로 다녀오면 현실의 시간은 얼마나 흐르는지 등 내가 가상 세계를 실제로 창조한다면 어떤 규칙을 넣을 것인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속성에 맞게 만들어 봅시다.

 

 ‘한계’는 이 규칙들에 제약을 거는 것입니다. 한계는 ‘캐릭터의 한계’와 ‘주요 개념의 한계’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요. ‘캐릭터의 한계’는 캐릭터 역할의 한계와 능력의 한계로 다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역할의 한계는 해당 역할에 부여된 규칙과 관계있어요.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이어서 얘기한다면, 이 세계에서 캐릭터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어떤 한계점을 지니는지 설정해야 합니다. 과거로 간 캐릭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미래인이라는 걸 밝히면 안 될 수도 있고, 과거에 다녀오는 동안에 현재 세계에서는 수면에서 깨어나지 않아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위기를 막을 시간이 한정될 수도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는 주인공의 능력치에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촘촘히 설정해 주는 것입니다. ‘과거로 가는 것’이 주인공 고유의 능력이라면 어떤 때에 갈 수 없는지, 몇 번이나 갈 수 있는지, 과거로 가면 어떤 것까지 할 수 있고 없는지(예컨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 등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이러한 한계가 없다면 주인공이 너무 전능해져서 위기가 발생할 타이밍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곧 이야기의 긴장이 떨어져 아무리 위험한 일이 뻥뻥 터져도 어떻게든 잘 되겠지...라는 태평한 마음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라면 이런 마음이 든다면 편안하고 좋겠지만, 사람들이 이야기를 즐기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겪을 수 없고 겪어서는 안 되는 위험을 안전하게 대리 체험한 후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라 각종 한계를 통한 긴장감 조성은 필수입니다. 물론 이런 설정을 역으로 활용하는 장르도 있습니다. 『범죄도시』 시리즈로 대표되는 먼치킨 주인공이 활약하는 세계관에서는 주인공의 능력에 한계를 최대한 두지 않음으로써 그 장르를 즐기는 콘텐츠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주요 개념의 한계’도 필요합니다. 주인공이 아무 때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관련된 물건과 접촉할 때 그 물건과 관련 있는 과거로 돌아간다든지(『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김혜정)), 과거로 가기 위해서는 꼭 특정 타임머신을 타야 한다든지,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든지(『백 투 더 퓨처』)요. 이런 한계를 이용해 주인공의 움직임을 어렵게 만들거나 결정적인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 타임머신이 고장 난다거나 과거에 가서 했던 행동 때문에 현재가 엉망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고요.

 

 ‘세계관’이라는 어쩐지 거대하게 느껴지는 단어 때문에 시작부터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관은 결국 독자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야기에 지금 현실과 다른 사건과 속성들이 있을 때 그 세계만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와 규칙을 설정해 이야기에 녹인다면 독자들은 마치 진짜 세계와 같이 유기적으로 그럴싸한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창조된 세계에 더욱 몰입할 수 있죠. 2화 ‘길 떠났다 돌아오는 이야기’ 플롯 설명에서도 말씀드렸듯, 각종 공모전에서 제시어로 나오는 키워드가 제약이 아닌 창작자들의 상상력에 더 불을 붙이는 것처럼, 참신한 설정과 논리로 짜인 세계관은 창작자에겐 길잡이가 향유자들에겐 놀이터가 됩니다. 

 1화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란 ‘빠져드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세계관은 이야기가 시발점이 되는 새로운 세계 하나를 통째로 구축하는 것이라 이 세계를 토대로 하여 후속 이야기를 확장하기에 용이합니다. 즉 향유자들 입장에서는 내가 즐기는 이야기가 최대한 오래도록 살아남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강력한 팬덤이 형성된 서사 콘텐츠에는 탄탄한 세계관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빼앗은 세계관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정교하고 탄탄하게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세계관이라는 도구를 마음껏 활용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