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많이 읽히는 여행 에세이를 쓰는 몇 가지 방법


정숙영

여행작가


스물 여덟살에 아무 생각 없이 떠났던 유럽 여행이 인생을 뒤집어 엎어놓은 덕분에 20년 가까이 여행 작가로 살고 있는 사람.
그 유럽 여행의 기록은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이라는 책으로 태어났고 의외로 많은 사랑을 받아 출판계와 여행계가 모두 놀라기도 했다. <금토일 해외여행><무작정 따라하기 도쿄><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사바이 인도차이나> 등 가이드북과 에세이를 꾸준히 내고 있고, 지금도 무언가를 쓰는 중이다. <엄마와 두 딸의 데이트>는 문광부 우수 도서에, <여행자의 글쓰기>는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3강 나만 쓸 수 있는 여행기를 써 봅시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2편부터 읽기->👉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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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쓰자 

‘여행 에세이’는 여러가지 형식으로 쓸 수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에세이에 대해 배울 때는 묵직하고 철학적인 중수필을 뜻한다고 배웠던 거 같은데, 출판계에 들어와서 보니 모든 여행 논픽션 문학 전반을 ‘여행에세이’라는 장르명으로 부르더라고요.
‘논픽션 전반’이라는 것은 매우 포괄적인 형태를 아우르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줄글로도 쓸 수 있지만, 운문형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시나 아포리즘처럼 짧고 운율이 있으며 아름다운 언어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나온지 20년도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는<끌림>은 운문형 여행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성도 다양하게 쓸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는 것은 하나의 여행을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순행식 구성이지만, 다양한 여행의 경험을 일정 주제로 모아서 쓰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도 쓸 수 있죠.
문체 또한 그렇습니다. 딱히 정해진 문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쓰면 됩니다. 평소 아름답고 문학성이 뛰어난 문장을 쓰는 사람이라면 여행의 감수성을 듬뿍 살린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면 됩니다. 유머감각이나 위트, 일명 ‘드립력’에 자신이 있다면 술자리에서 너스레 늘어놓는 듯한 재기 발랄한 여행기를 쓸 수 있겠죠.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사람이거나 무언가에 전문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면 여행의 순간 순간 만나는 것들과 나의 지식을 결합하고 싶을텐데, 이런 여행기에는 건조하고 정중한 문체가 잘 어울리겠죠?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마음 껏 쓰시면 됩니다. 


위에 열거한 특기가 없다고요? 그냥 써보세요. 조금 서툴지라도 가감 없이 풀어 놓는 진심은 언제나 가장 잘 통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평범한 문체로 쓴다고? 좀 더 아름다운 글로 써야 되는 거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든 문장에 멋을 내보려고 노력 중이라면, 안그래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깨에 힘 잔뜩 주고 세상 오만 미사여구 다 갖다 붙여가며 쓴 글은 그냥 읽기만 어려울 뿐 입니다. 수수하고 평범하더라도 내 여행과 세계관에 가장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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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Unsplash의oxana v


문체에 자신이 없는 분들이 여행기를 쓸 때, 진솔하면서도 읽을 맛 나는 여행기로 완성하기 위해 쓸만한 팁 몇 가지를 알려드릴까 합니다. 


첫째. 문장의 길이를 되도록 짧게 써보세요. 나는 도쿄에 갔다가 다시 오사카로 갔다가 후쿠오카에 갔다’가 아니라, ‘나는 도쿄에 갔다. 그리고 다시 오사카로 갔다. 그다음에 또 후쿠오카로 갔다’로 쓰는 겁니다. 문장이 훨씬 읽기 편해지면서 리듬감이 덤으로 따라옵니다. 


둘째. 표현과 묘사는 최대한 자세히 해보세요. ‘멋졌다’ 아름다웠다’ 좋았다’로 끝내지 말고, 그때 내 마음에 들어 왔던 생각과 감정을 꾸밈없이 솔직히 써보세요. 설명하고 싶은 여행의 순간 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나만의 발견이 있었는지 곰곰히 떠올려 보세요. 


셋째. 나만의 표현법을 찾아보세요. 기발한 비유법과 무해한 유머감각은 어떤 문체에서나 유효합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정말 크고 웅장했다’도 좋지만, ‘로마의 콜로세움은 마치 오천년 된 잠실 주 경기장 같았다’는 조금 어이가 없긴 하지만 훨씬 신선합니다. 


넷째. 많이 쓰고 덜어내세요. 일단 쓸 때는 쓰고 싶은 것을 다 써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마신 것 부터 그날 지불한 버스 표 값, 길에서 지나친 이상한 아저씨의 바지 색깔, 길에서 본 그래피티의 내용, 펍에서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 몸에서 나던 퀴퀴한 냄새까지 모조리 적어두세요. 그리고는 한동안 쳐다도 보지 마세요. A4 10장 정도의 분량이면 한 일주일, A4 50장이넘어가면 한 달 정도 처박아두세요. 그 이후에 꺼내서 보면 마치 내 살점 같던 원고가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이게 될 겁니다. 그때는 덜어낼 차례입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와 그위에 붙일 살점만 빼고는 다 덜어내세요. 잡동사니로 가득했던 원고 속에서 깔끔하고 매끈한 여행기가 번데기를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날개를 펼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입니다. 




  • 내가 재밌으면 독자도 재밌다 

지금까지 여행기를 쓰는 요령이나 팁에 대해서 이런 저런 썰을 풀어 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저도 매우 기쁘겠습니다. 
갑자기 옛 기억 하나가 떠오르네요. 제 첫 여행에서 만났던 잊지 못하는 언니 한 분이 계십니다. 
제 첫 여행의 첫 숙소 주인장이셨는데, 온몸으로 여행의 기운을 내뿜는 분이셨어요. 그 언니가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어요.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지식과 추억을 온전히 네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수파리(守破離)’라는 개념을 알려주셨습니다. 무언가를 배워 그것을 지켜나가고(守),지켜나간 것을 깨면서 다른 진리를 함께 배워나간 뒤(破),나만의 진리를 깨우치고 떠나라(離)라는 개념이었어요.

 왠지 지금 제가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리(離)’에 해당하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출판된 여행기중에 소위 ‘베스트셀러’나 화제작에 오른 작품은 의외로 그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여행기들을 읽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생생합니다. 여행에서 느꼈던 흥분과 재미가 행간에 차곡차곡쌓여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들려주고싶어서 반짝이는 눈과 달싹이는 입술이 글자 너머로 보이는 느낌입니다 .글은 서툴고 사진도 그다지 예쁘지 않은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고 감동적입니다. 작가의 재미와 애정과 흥분과 에너지가 행간과 페이지 구석구석에 다 묻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서툴어도 괜찮습니다. 가장 순수한 자세에서 여행의 흥분과 감동을 한 번 쭉 써 내려가 보세요. 

지금 첫 여행 에세이 책을 쓰시는 거라고요? 

축하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기를 쓰실 수 있는 시점에 계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