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많이 읽히는 여행 에세이를 쓰는 몇 가지 방법


정숙영

여행작가


스물 여덟살에 아무 생각 없이 떠났던 유럽 여행이 인생을 뒤집어 엎어놓은 덕분에 20년 가까이 여행 작가로 살고 있는 사람.
그 유럽 여행의 기록은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이라는 책으로 태어났고 의외로 많은 사랑을 받아 출판계와 여행계가 모두 놀라기도 했다. <금토일 해외여행><무작정 따라하기 도쿄><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사바이 인도차이나> 등 가이드북과 에세이를 꾸준히 내고 있고, 지금도 무언가를 쓰는 중이다. <엄마와 두 딸의 데이트>는 문광부 우수 도서에, <여행자의 글쓰기>는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2강 꼭! 특별한 여행이어야만 할까요?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부터 읽기->👉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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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고 계신 분의 대부분은 아마도 멋진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쓰려고 하고 있거나, 이제 막 쓰기 시작한 분일 것 입니다. 글이야 사실 그냥 쓰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드는 생각 하나는 도저히 떨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뭐냐면요,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 거 맞나?’ 

그리고 저는 이렇게 답을 드리겠습니다. 네. 잘 쓰고 계십니다. 매우 소중한 기록을 쓰고 계시다는 것은 안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세상에 나쁜 여행기는 없습니다. 모든 여행과 그 여행의 기록은 나름의 이유로 모두 소중합니다. 다만, 좀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공감 받는 여행기가 따로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행기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꼭 대단히 특별한 여행일 필요는 없다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시시한 여행에 대한 여행기를 누가 읽어?”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여행일수록 눈에 띌 확률이 높다고요. 네. 맞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가기 힘든 여행은 아무래도 주목 받기 쉽습니다. 이를테면 히말라야를 모터사이클로 누빈다거나, 웬만한 한국 사람은 듣도 보도 못한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를 여행한다거나, 아마존의 정글이나 남태평양의 작은 섬 같은 오지를 헤매는 여행은 신기해서라도 눈길을 끌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특별한 여행도 관심 받기 좋습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여행, 어린아이나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 온갖 악조건을 딛고 떠나는 여행 등은 궁금증을 일으키기 마련이죠. 

그러나 특별한 여행을 기록한 여행기가 반드시 좋은 여행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특별함을 기록하기에 글이 가장 적절한 도구인지도 의문이 들고요. 특히 요즘처럼 유튜브며 틱톡같은 개인 영상 플랫폼이 발달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글은 그러한 ‘특별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지만, 영상은 그냥 각막에 바로 꽂아주니까요. 유튜브만 뒤져도 오만 기상천외한 여행지에 다녀온 영상이 하루에 수십 수백 개 씩 업데이트되는데, 개중에는 영상미가 매우 뛰어나 내가 그곳에 직접간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옛날처럼 여행이 어렵고 정보가 부족한 시대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비포장 도로에 트럭을 얻어타고 다녀야 했던 동남아의 오지들도 요즘은 웬만하면 도로 포장 다 되어 있고 기차도 다닙니다. 스카이스캐너에서 검색 한방이면 인천공항에서 모아이석상 서있는 이스터섬까지 경유 항공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여행기 ‘글’은 어떤 것 일까요? 모르기는 몰라도, 대단히 특별함이 있는 여행의 기록보다는 본질에 충실한 여행기일 것이라는생각이 듭니다..영상으로 보면 더 쉽고 직관적인데도 굳이 글로 된 것을 찾아 읽는 거니까요. 즉, 대단하고 특별한 여행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냥 남들 다 가는 동네에가도, 굳이 여권 들고 비행기타고 남의 나라로 떠나지 않아도, 읽을 맛이 있고 여행기의 본질에 충실한, ‘잘 쓴’ 여행기가 결국은 사랑받게 됩니다. 


63a541e3f033c.jpg사진: Unsplash의KAL VISUALS


  •  ‘잘 쓴’ 여행기란 이런 것, 또는 이렇지 않은 것


자, 그렇다면 ‘잘 쓴’ 여행기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발견’이 들어간 여행기라고 생각합니다. 발견이라고 해서 대단한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던 사람이 여행에서 아직 학계에 보고 되지 않은 밀림의 곤충이나 양자역학의 새로운 이론 같은 걸 발견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반의 반 명도 없을 겁니다. 여행으로 떠난 비일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필자의 시선을 통해 지금까지 몰랐거나 보지 못했 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한국보다 훨씬 시꺼먼 베트남 숲의 빛깔, 유난히 낮게 뜨는 유럽의 구름,난처한 일이 생기면 그냥 마구 웃어버리는 태국 사람들의 습관. 그곳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지만 내 눈에는 처음 걸린 모든 것들이 ‘발견’의 대상입니다.

 비단 외적인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우리 엄마의 표정, 오지에 틀어 박혀서 비로소 알게 된 내 안의 쇼핑 욕구, 인종차별이나 부조리 앞에서 변화하는 나의 감정. 여행은 나,그리고 나와 가까운 것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히 저는 여행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글들을 조금 더 사랑합니다. 한 두 번 떠난 여행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다는 건 거창한 거짓말일 수 있겠죠. 그러나 저는 여행이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지도를 그리는 데 꼭 필요한 경험이 될 수는 있다고 믿습니다. 경험 안에서 발견하고 성찰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이란 인류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이야기잖아요. 물론,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관점입니다. 아마 다른 작가분께 이 화두를 드린다면 저와는 또 다른 관점을 말씀하실 것이고, 이것 또한 옳은 답일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말씀을 하실 지 궁금해집니다.

다만, 확신하는 것은 있습니다. 잘 쓴 여행기가 되기 위해서 절대로 피해야 할 두 가지에 대해서는 어떤 작가 분이든 동의해주실 거라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보통 내 여행기가 쓸모 있기를 바라는 분들이 흔히 쓰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 속에서는 저자의 얼굴이 보이지도,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 여행이 어떤 여행이었는지도 안보이고요. 그저 글 안에서 영수증, 간판, 위키피디아, 구글맵이 나부낄 뿐입니다.

물론 정보가 들어가도 됩니다. 제주도 애월의 어떤 식당이 맛있었다는 얘기, 써도 됩니다. 루이비통 네버풀이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에서는 면세 받으면 가격이 얼마라는 얘기, 괜찮습니다. 단, 거기서 멈추지는 말아주세요. 맛있게 먹었던 식당의 가격과 위치 만큼이나 음식의 맛과 그 식사에 얽힌 사연을 중요하게 풀어주세요. 네버풀 면세 받는 방법보다는 그 가방을 갖고 싶었던 이유와 내면의 욕망, 그날 파리의 날씨와 라파예트 백화점에 대한 나만의 감상, 그리고 물건을 사는 과정과 갖게 된 후의 마음 등에 집중해 주세요.

둘째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여행기를 마치 브이로그 찍는 것 처럼 쓰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으로는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갔다가 어디를 갔다가 뭐먹고 잤다,로 마무리하는 거죠. 아니, 안되는 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구성해도 됩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여행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형식은 여행기의 가장 고전적이고 대중적인형식입니다. 다만, 단순한 일정의 나열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이름 모를 현자는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책으로 내고자 하는 기록이라면, 이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잘라내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 주세요.  

여행기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문학’입니다. 여행기는 여행을 소재로 한 ‘수필’입니다 .남의 나라말로 하면 ‘에세이’죠. 정보에 치우치거나 일정을 단순히 나열한 글의 가장 큰 문제는 문학성이 결여되었다는 것 입니다. 잊지마세요. 여행기를 쓰고 있는 동안의 우리는 어디까지나 문학가라는 걸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