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제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그 여행을 떠났던 게 말이죠. 지금도 그 여행의 모든 순간이 기억날 정도니,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는 오죽했을까요. 한 몇달은 그 여행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 여행의 여운이 너무도 짙고 길어서, 저는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묻지도 않은 여행 이야기를 수십 분씩 쏟아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이 지쳐서 화제가 바뀔 때 쯤이면 저는 제 이야기를 부랴부랴 마무리하며 한마디를 꼭 덧붙였습니다.
“나, 내 여행 얘기 꼭 책으로 낼 거야!!!!”
책 내줄 만한 데가 있었냐고요?아뇨.
작가지망생이나,출판계종사자였냐고요? 아아뇨.
저는, 그냥 백수였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대한민국 청년 실업율에 당당히 머릿수를 보태고 있던 흔한 백수였어요. 백수가 되기 전에는 그냥 회사원이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래 희망으로 작가를 썼던 거 같긴 한데, 초등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깨끗하게 잊어버렸습니다.
글 잘 쓴다는 얘기를 듣긴했어요.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 몇 번 받았고, 회사 다닐 때 사수한테 보도자료 잘 쓴다는 칭찬 자주 받았고요. 이런 저런 인터넷 게시판에 시시한 글을 올리면 재밌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뭘 해볼 생각은 없었어요. 아니,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술먹고 노는 건 그것보다 더 좋았고, 제법 문법에 맞고 조리 있는 문장을 쓰긴 하지만 A4 열 장 분량의 레포트도 다 쓰지 못 할 정도로 지구력이 최악이었으니까요.
그런 제가,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던 겁니다.
근데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 뭔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거든요.
뭐랄까, 수맥이 터진 느낌이었어요. 내 안에는 나조차도 몰랐던 이야기에 대한 커다란 욕망이 거대한 지하수 수맥처럼 숨어있었는데, 그것을 여행이라는 거대한 곡괭이가 내리 찍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와 버린 겁니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며 만들어 졌던 수많은 감정과 사연과 상념들. 이것들이 그냥마구 솟아나 어디론가로 흘러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었습니다. 글로 붙잡아 책으로 만들어 담아 두고 싶었던 거죠.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마 이런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Unsplash의Mukuko Studio
마음 속에 이야기의 수맥이 흐르는 사람에게 여행이란 너무나 좋은 이야깃거리이자 자극제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비일상이 주는 자극 그 자체니까요. 가장 밋밋하고 재미없는 여행에서조차, 우리는 일상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일상에서 먹지 않았던 음식을 먹고 일상을 구성하지 않는 풍경과 조우합니다. 창밖으로 놀라운 풍경이 기다리는 숙소에서 일어나 최고의 음식을 먹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즐기는 여행이라면 그 자극과 감동이 말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옆방에서 미친 파티광들이 밤새도록 날뛰는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 듣도 보도 못한 끔찍한 음식을 먹으며 소똥이 굴러다니는 황량한 길을 걷는여행조차 일상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경험이자 이야깃거리잖아요.
여행을 기록하고 담아두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는 사진이 있을 겁니다.요즘에는 영상이 대세죠. 명실상부한 유튜브시대가 아니겠습니까.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이한 방법들도 있어요. 제 동생은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요, 여행을 떠나면 그곳의 소리를 기록합니다. 새소리, 차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등등을 녹음해 두었다가 나중에 여행이 그리울 때 듣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작업하는 작품에 써먹기도 합니다.
저는 글로 기록해서 전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영상이 얼마나 솔직하고 순발력있는 도구인지, 사진이 얼마나 감성과 이성을 고루 갖춘 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나 적확한 정보 전달이 필요할 때 길고 장황한 설명보다 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훨씬 더 큰힘을 발휘하는 걸 지금까지 숱하게경험해왔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다른 도구들이 못 가진 강력한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여행의 순간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소화하고 온전히 내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마음에 심상으로 맺힌 여행을 내보이게 되는 것. 눈으로 본 것 외에도 마음으로 본 것을 함께 전달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글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성질인 ‘시간을 들인다’ 또한 저는 때로는 매우 마음에 듭니다. 시간을 들여 한 줄 한 줄을 공들여 써나가는 동안 저는 키보드 타건의 속도에 맞춰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마음으로 다시 밟아가는 재답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과정인지 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거라고 생각해요.
내 여행 이야기를 여행기 원고의 형태로 정리해두는 건 어떤 의미로라도 해 볼만 한 작업입니다. 기억은 낡아가기 마련이고, 메모나 사진 등 파편으로 남은 기록은 그대로 두면 기억마저 파편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웬만한 여행은 그래도 돼요. 가장 좋은 기억 한 두 개만 간직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여행이 많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여행들이 인생에 한 번 씩은 찾아오잖아요. 도저히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된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는 못배기는 여행들. 내 눈과 다리가 한 여행은물론 내 마음이 떠난 여행의 과정을 모두 남겨 놓고 싶은 그런여행. 그런 여행을 인생에서 마주친 행운을 만났다면, 여행기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왕 여행기를 끝까지 썼다면 책으로 출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 같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활자의 형태로 종이에 앉아 물성을 띄고 있는 모습, 보고 싶은 게 당연하죠. 저는 지금까지 수십 번을 봤는 데도 볼 때 마다 기분이 묘해집니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물건의 형태로 선물할 수 있다는 것도 꽤나 근사한 일이고요.
저는 제 여행기를 우선 블로그에 연재한 뒤 그것을 원고 형태로 다시 다듬고 그것을 여러 출판사에 뿌렸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퇴짜를 맞았죠. 내 원고로는 책을 만들 수 없나보다,하고 포기를 했었는데, 2년 후 어느 출판사에서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주셔서 책으로 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 일이고 그때는 지금처럼 자가 출판이나 독립 출판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고요. 아마 그때도 부크크와 같은 자가 출판 시스템이 있었다면, 출판사들에게 줄줄이 퇴짜를 맞았을 때 포기하는 대신 부크크로 눈을 돌렸을 것 같습니다. 뭔가 서론이 길었네요. 다음에는 나의 여행을 글로 옮길 때 고려해야 할 실전 팁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5/29 공개)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제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그 여행을 떠났던 게 말이죠. 지금도 그 여행의 모든 순간이 기억날 정도니,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는 오죽했을까요. 한 몇달은 그 여행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 여행의 여운이 너무도 짙고 길어서, 저는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묻지도 않은 여행 이야기를 수십 분씩 쏟아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이 지쳐서 화제가 바뀔 때 쯤이면 저는 제 이야기를 부랴부랴 마무리하며 한마디를 꼭 덧붙였습니다.
“나, 내 여행 얘기 꼭 책으로 낼 거야!!!!”
책 내줄 만한 데가 있었냐고요?아뇨.
작가지망생이나,출판계종사자였냐고요? 아아뇨.
저는, 그냥 백수였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대한민국 청년 실업율에 당당히 머릿수를 보태고 있던 흔한 백수였어요. 백수가 되기 전에는 그냥 회사원이었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래 희망으로 작가를 썼던 거 같긴 한데, 초등학교 졸업한 이후로는 깨끗하게 잊어버렸습니다.
글 잘 쓴다는 얘기를 듣긴했어요.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 몇 번 받았고, 회사 다닐 때 사수한테 보도자료 잘 쓴다는 칭찬 자주 받았고요. 이런 저런 인터넷 게시판에 시시한 글을 올리면 재밌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뭘 해볼 생각은 없었어요. 아니,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술먹고 노는 건 그것보다 더 좋았고, 제법 문법에 맞고 조리 있는 문장을 쓰긴 하지만 A4 열 장 분량의 레포트도 다 쓰지 못 할 정도로 지구력이 최악이었으니까요.
그런 제가,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던 겁니다.
근데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 뭔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거든요.
뭐랄까, 수맥이 터진 느낌이었어요. 내 안에는 나조차도 몰랐던 이야기에 대한 커다란 욕망이 거대한 지하수 수맥처럼 숨어있었는데, 그것을 여행이라는 거대한 곡괭이가 내리 찍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와 버린 겁니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와 조우하며 만들어 졌던 수많은 감정과 사연과 상념들. 이것들이 그냥마구 솟아나 어디론가로 흘러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었습니다. 글로 붙잡아 책으로 만들어 담아 두고 싶었던 거죠.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마 이런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Unsplash의Mukuko Studio
마음 속에 이야기의 수맥이 흐르는 사람에게 여행이란 너무나 좋은 이야깃거리이자 자극제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비일상이 주는 자극 그 자체니까요. 가장 밋밋하고 재미없는 여행에서조차, 우리는 일상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일상에서 먹지 않았던 음식을 먹고 일상을 구성하지 않는 풍경과 조우합니다. 창밖으로 놀라운 풍경이 기다리는 숙소에서 일어나 최고의 음식을 먹고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즐기는 여행이라면 그 자극과 감동이 말할 것도 없겠죠. 하지만 옆방에서 미친 파티광들이 밤새도록 날뛰는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 듣도 보도 못한 끔찍한 음식을 먹으며 소똥이 굴러다니는 황량한 길을 걷는여행조차 일상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경험이자 이야깃거리잖아요.
여행을 기록하고 담아두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는 사진이 있을 겁니다.요즘에는 영상이 대세죠. 명실상부한 유튜브시대가 아니겠습니까. 그림을 그리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이한 방법들도 있어요. 제 동생은 사운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요, 여행을 떠나면 그곳의 소리를 기록합니다. 새소리, 차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등등을 녹음해 두었다가 나중에 여행이 그리울 때 듣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가 작업하는 작품에 써먹기도 합니다.
저는 글로 기록해서 전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압니다. 영상이 얼마나 솔직하고 순발력있는 도구인지, 사진이 얼마나 감성과 이성을 고루 갖춘 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나 적확한 정보 전달이 필요할 때 길고 장황한 설명보다 잘 찍은 한 장의 사진이 훨씬 더 큰힘을 발휘하는 걸 지금까지 숱하게경험해왔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다른 도구들이 못 가진 강력한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여행의 순간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소화하고 온전히 내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마음에 심상으로 맺힌 여행을 내보이게 되는 것. 눈으로 본 것 외에도 마음으로 본 것을 함께 전달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글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성질인 ‘시간을 들인다’ 또한 저는 때로는 매우 마음에 듭니다. 시간을 들여 한 줄 한 줄을 공들여 써나가는 동안 저는 키보드 타건의 속도에 맞춰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마음으로 다시 밟아가는 재답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과정인지 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거라고 생각해요.
내 여행 이야기를 여행기 원고의 형태로 정리해두는 건 어떤 의미로라도 해 볼만 한 작업입니다. 기억은 낡아가기 마련이고, 메모나 사진 등 파편으로 남은 기록은 그대로 두면 기억마저 파편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웬만한 여행은 그래도 돼요. 가장 좋은 기억 한 두 개만 간직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여행이 많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여행들이 인생에 한 번 씩은 찾아오잖아요. 도저히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된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는 못배기는 여행들. 내 눈과 다리가 한 여행은물론 내 마음이 떠난 여행의 과정을 모두 남겨 놓고 싶은 그런여행. 그런 여행을 인생에서 마주친 행운을 만났다면, 여행기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왕 여행기를 끝까지 썼다면 책으로 출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 같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활자의 형태로 종이에 앉아 물성을 띄고 있는 모습, 보고 싶은 게 당연하죠. 저는 지금까지 수십 번을 봤는 데도 볼 때 마다 기분이 묘해집니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물건의 형태로 선물할 수 있다는 것도 꽤나 근사한 일이고요.
저는 제 여행기를 우선 블로그에 연재한 뒤 그것을 원고 형태로 다시 다듬고 그것을 여러 출판사에 뿌렸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퇴짜를 맞았죠. 내 원고로는 책을 만들 수 없나보다,하고 포기를 했었는데, 2년 후 어느 출판사에서 블로그를 보고 연락을 주셔서 책으로 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 일이고 그때는 지금처럼 자가 출판이나 독립 출판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고요. 아마 그때도 부크크와 같은 자가 출판 시스템이 있었다면, 출판사들에게 줄줄이 퇴짜를 맞았을 때 포기하는 대신 부크크로 눈을 돌렸을 것 같습니다. 뭔가 서론이 길었네요. 다음에는 나의 여행을 글로 옮길 때 고려해야 할 실전 팁을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5/29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