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부터 고백하자면, 저는 예상외로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작품을 평해주는 ‘합평’에는 참여한 적이 있지만요. 활동 기간이나 낸 책의 종 수를 따진다면 엄청난 의외의 사실입니다. 제안을 거절했냐고요? 아무도 저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일까요? 세상에 공급도 그리고 수요도 넘쳐나는 게 바로 글쓰기 수업인데 말이에요. 기실 교육에 목숨 건 한국 땅에서, 상위 0.1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 예체 능계 종사자는 교육자로서 먹고살게 되지요. 그러니 지금껏 글쓰기 수업 제안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저는, 아무래도 딱히 배우고 싶지는 않은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왜 나에게는 수업 제의가 오지 않을까? 그러한 자문에서 이 글은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맨 위의 ‘초장부터’로 시작하는 그 문장이, 제가 글 가르칠 목적으로 쓰는 생애 첫 문장이라는 게 자못 신기하긴 합니다.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길 시작할 것이니까요. 정확히는 여러분이 다른 글이 아니라 ‘소설’이 쓰고 싶을 때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 것인가, 에 대해서요.
*
‘당신은 왜 소설을 쓰려고 하나요?’
아마 세상 모든 배움의 시작에서 학생은 선생에게 ‘왜 이걸 하려고 하느냐?’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받겠지요. 하지만 저더러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느냐, 하고 물으면, 참 이상하죠, 뾰족 한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제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학생에게 던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답이 없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소설뿐 아니라 시도 그림도 악기연주도 마찬가지겠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내면을 추동하는 케이스가 꽤 될 겁니다.
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내 상처의 치유, 예술혼의 발현, 아름다움에 대한 욕 망, 혹은 하다못해 하루키처럼 떼돈을 번 후 재즈바를 운영하며 살고 싶다고 답해도 옳다 그 르다 평가할 수 없죠. 다만 이 질문에는 꼭 답을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문장이 여기서 나올 테니까요.
“당신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순간, 어떤 공간에 있나요?”
즉 저는 소설을 쓰는 당신에게는 흥미가 없다 이겁니다. 제가 궁금한 건 당신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이렇게 매몰찬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당신은 소설 쓰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거든요. 물론 대다수 소설가의 시작은 자전적인 상처를 풀어놓고 싶다는 욕망 에서 출발하죠(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조차 주인공은 이미 또렷이 존재해야 합니 다. 작가가 아닌 주인공이 말입니다.
첫 문장을 쓰기 전 의식처럼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방바닥을 벅벅 긁고 있는 주인공을 쫓아내야 하죠. 독자는 작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돌처럼 잘 생긴 경우를 제외 한다면요(그리고 이 경우에도 금방 흥미를 잃습니다). 독자가 원하는 건 오롯이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작가 역시 작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주인공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상상 합시다. 지금 주인공은 어느 계절에 어떤 공간에서 무슨 자세로 존재하고 있지?
‘줄거리는요? 주제는요? 전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는데요? 뭐에 대해 쓸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다짜고짜 주인공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상상하자고 말하고 나니, 이런 질문이 올 것도 같네요. 그럼 저는 대답할 것입니다.
“그걸 하나도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게, ‘쉬운 첫 문장’의 비결이에요.”

OOO 작가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혹은 나의 인생작인 《OOO》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또는 내가 평소 꿈속에서도 고민했던 심오한 주제의식을 표현해보고 싶다, 하는 열망들은 다 좋습니다. 필요하죠. ‘소설을 쓰겠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토록 뜨거운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은 저 멀리 있는 정상이 아니라 내 발 앞을 보아야 합니다. 당장 가팔라지는 경사와 여기저기 도사린 나무뿌리, 돌부리를 어찌 극복할지가 먼저입니다. 이 과정에서 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가장 힘을 덜 들이는 자세로 부상 없이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 안짱다리로 걸었든 팔자로 걸었든 중요하지 않아요. 내게 가장 익숙한 걸음걸이를 택해, 정상에 오를 때까지 지치고 다치지 않아야 합니다.
어깨에서 힘을 빼면, 자신이 가장 편하게 묘사할 수 있는 상황과 장소가 손끝으로부터 주르 륵 흘러나옵니다. 예컨대 저는 위스키 바에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하는 고독한 변호사에 대 해서는 절대로 쉽게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벽 두 시,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소주를 주문하 고서는 종편 방송이 흘러나오는 티브이를 바라보는 포차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을 수 있어요.
자, 그 아르바이트생을 데리고 정말로 소설을 시작해볼까요. 이름은요, 여러분이 가장 좋아 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혹은 정치인의 이름 세 글자를 붙여주세요. 이거 정말 꿀팁입니다, 어쩌면 제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들 중 가장 유용할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가장 익숙하죠, 그러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면 필시 비대한 자의식을 독자에 게 들키고 맙니다. 주변인을 끌어오자니 생각보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윤리적이지도 않지 요. 그러니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착각’을 하게끔 만드는 유명인의 이름 을 씁시다. 손흥민? 김고은? 다 좋아요. 나중에 컨트롤+에프를 이용해 이름을 바꾸면 그만입 니다(실제로 이 방법을 이용해 써서 출간한 장편소설이 몇 편이나 있습니다. 작품과 모델은, 무덤 속까지 비밀이에요). 지금 이 글에서 저는 주인공에게 '소연'이란 이름을 붙일 텐데요, 물론 컨트롤+에프를 이용해 바꾼 겁니다. 초고에서의 이름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자, 이제 첫 문장을, 아니 첫 단락을 써보겠습니다.
초장부터 고백하자면, 저는 예상외로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작품을 평해주는 ‘합평’에는 참여한 적이 있지만요. 활동 기간이나 낸 책의 종 수를 따진다면 엄청난 의외의 사실입니다. 제안을 거절했냐고요? 아무도 저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왜일까요? 세상에 공급도 그리고 수요도 넘쳐나는 게 바로 글쓰기 수업인데 말이에요. 기실 교육에 목숨 건 한국 땅에서, 상위 0.1퍼센트를 제외한 나머지 예체 능계 종사자는 교육자로서 먹고살게 되지요. 그러니 지금껏 글쓰기 수업 제안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저는, 아무래도 딱히 배우고 싶지는 않은 대상일지도 모릅니다.
왜 나에게는 수업 제의가 오지 않을까? 그러한 자문에서 이 글은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맨 위의 ‘초장부터’로 시작하는 그 문장이, 제가 글 가르칠 목적으로 쓰는 생애 첫 문장이라는 게 자못 신기하긴 합니다.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길 시작할 것이니까요. 정확히는 여러분이 다른 글이 아니라 ‘소설’이 쓰고 싶을 때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 것인가, 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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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소설을 쓰려고 하나요?’
아마 세상 모든 배움의 시작에서 학생은 선생에게 ‘왜 이걸 하려고 하느냐?’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받겠지요. 하지만 저더러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느냐, 하고 물으면, 참 이상하죠, 뾰족 한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제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학생에게 던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답이 없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소설뿐 아니라 시도 그림도 악기연주도 마찬가지겠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내면을 추동하는 케이스가 꽤 될 겁니다.
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내 상처의 치유, 예술혼의 발현, 아름다움에 대한 욕 망, 혹은 하다못해 하루키처럼 떼돈을 번 후 재즈바를 운영하며 살고 싶다고 답해도 옳다 그 르다 평가할 수 없죠. 다만 이 질문에는 꼭 답을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첫 문장이 여기서 나올 테니까요.
“당신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순간, 어떤 공간에 있나요?”
즉 저는 소설을 쓰는 당신에게는 흥미가 없다 이겁니다. 제가 궁금한 건 당신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이렇게 매몰찬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당신은 소설 쓰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거든요. 물론 대다수 소설가의 시작은 자전적인 상처를 풀어놓고 싶다는 욕망 에서 출발하죠(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조차 주인공은 이미 또렷이 존재해야 합니 다. 작가가 아닌 주인공이 말입니다.
첫 문장을 쓰기 전 의식처럼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방바닥을 벅벅 긁고 있는 주인공을 쫓아내야 하죠. 독자는 작가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돌처럼 잘 생긴 경우를 제외 한다면요(그리고 이 경우에도 금방 흥미를 잃습니다). 독자가 원하는 건 오롯이 주인공입니다. 그러니 작가 역시 작가 자신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주인공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상상 합시다. 지금 주인공은 어느 계절에 어떤 공간에서 무슨 자세로 존재하고 있지?
‘줄거리는요? 주제는요? 전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는데요? 뭐에 대해 쓸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다짜고짜 주인공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상상하자고 말하고 나니, 이런 질문이 올 것도 같네요. 그럼 저는 대답할 것입니다.
“그걸 하나도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게, ‘쉬운 첫 문장’의 비결이에요.”
OOO 작가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혹은 나의 인생작인 《OOO》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또는 내가 평소 꿈속에서도 고민했던 심오한 주제의식을 표현해보고 싶다, 하는 열망들은 다 좋습니다. 필요하죠. ‘소설을 쓰겠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토록 뜨거운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여러분은 저 멀리 있는 정상이 아니라 내 발 앞을 보아야 합니다. 당장 가팔라지는 경사와 여기저기 도사린 나무뿌리, 돌부리를 어찌 극복할지가 먼저입니다. 이 과정에서 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가장 힘을 덜 들이는 자세로 부상 없이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평소에 안짱다리로 걸었든 팔자로 걸었든 중요하지 않아요. 내게 가장 익숙한 걸음걸이를 택해, 정상에 오를 때까지 지치고 다치지 않아야 합니다.
어깨에서 힘을 빼면, 자신이 가장 편하게 묘사할 수 있는 상황과 장소가 손끝으로부터 주르 륵 흘러나옵니다. 예컨대 저는 위스키 바에서 테이스팅 노트를 작성하는 고독한 변호사에 대 해서는 절대로 쉽게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벽 두 시,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소주를 주문하 고서는 종편 방송이 흘러나오는 티브이를 바라보는 포차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자석처럼 찰싹 달라붙을 수 있어요.
자, 그 아르바이트생을 데리고 정말로 소설을 시작해볼까요. 이름은요, 여러분이 가장 좋아 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혹은 정치인의 이름 세 글자를 붙여주세요. 이거 정말 꿀팁입니다, 어쩌면 제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방법들 중 가장 유용할지도 몰라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가장 익숙하죠, 그러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면 필시 비대한 자의식을 독자에 게 들키고 맙니다. 주변인을 끌어오자니 생각보다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윤리적이지도 않지 요. 그러니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착각’을 하게끔 만드는 유명인의 이름 을 씁시다. 손흥민? 김고은? 다 좋아요. 나중에 컨트롤+에프를 이용해 이름을 바꾸면 그만입 니다(실제로 이 방법을 이용해 써서 출간한 장편소설이 몇 편이나 있습니다. 작품과 모델은, 무덤 속까지 비밀이에요). 지금 이 글에서 저는 주인공에게 '소연'이란 이름을 붙일 텐데요, 물론 컨트롤+에프를 이용해 바꾼 겁니다. 초고에서의 이름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자, 이제 첫 문장을, 아니 첫 단락을 써보겠습니다.
소연은 유리문 밖을 응시했다. 갑자기 초여름 날마냥 더워진 봄밤이었다. 이렇게 더운데 아 직도 히터를 틀고 있다고? 테이블 여섯 개짜리 노포에서는 몹시 가혹한 일이었다. 앞 테이블 의 노인들은 연신 손부채질을 하며 뚝배기에 담긴 국물을 퍼먹고 있었다. 털모자를 쓴 노인보 다 대머리인 맞은편이 땀을 더 많이 흘렸다. 소연은 대머리 할아버지가 이곳 사장에게 후덥지 근한 가게에 대해 꾸중하기를, 찌개를 먹는 내내 바랐다.
자, 저는 이 단락을 4월 초 아주 작은 노포 안에서 썼습니다. 실제로, 제 앞에서는 고추장 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가게 안이 너무나 더워서 거기 손을 대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지요. 그 어떠한 왜곡을 거치지 않은 순도 백 프로의 지금 이 공간인 셈입니다(시간대는 조금 바꾸었지만요). 그렇다면 인물, 즉 주인공은 어떨까요?
선정되신 분들에게는 작가님이 직접 답변해주실 예정입니다!
*2강은 5/17일 오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