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문장 쓰는 법


설재인

소설가


일체의 등단 절차 혹은 공모전 당선 이력 없이 활동 중이다. 2019년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내가 만든 여자들> <사뭇 강펀치> <월영시장>,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 <붉은 마스크>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우리의 질량> <강한 견해> <내가 너에게 가면> <범람주의보> <딜리트> <캠프파이어> <소녀들은 참지 않아> <별빛 창창> <그 변기의 역학>, 에세이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가 있다.

 



3강 당신의 개화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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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2강 읽기->Click!


자, 이제 우리의 소연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다고요? 

제가 이래서 여러분이 내심 좋아하고 있는 유명인을 모델로 삼으라고 했던 겁니다. 작가가 주인공을 사랑할수록 글의 전개는 쉬워지고 독자 역시 몰입이 간편해집니다. 아빠가 동생을 편애하는지 아닌지는 세 살배기 아기도 알 수 있습니다. 독자 역시 작가가 주인공을 아끼는지 그렇지 않은지 기가 막히게 파악합니다(여기서 주의할 것. 작가가 주인공에게 자기 판타지를 투사하는 것과 주인공 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전자는 독자를 도망치게 만듭니다. 후자는 독자를 살살 홀리죠). 

제가 좋아하는 배우 A는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요? 여러분이 좋아해서 모델로 삼은 유명인은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까요? 안하무인의 대머리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나요? 다음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여러분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문제의식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게 됩니다. 이런 식의 과정을 거치면 비록 우리는 임기응변 식으로 땜질하듯 글을 이어갔지만, 읽는 독자에게는 나름 괜찮은 빌드업으로 여겨져요. 처음부터 주제와 메시지를 교과서처럼 제시한 것보다 훨씬 나은 인상을 준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 저는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 대부분을 이런 방식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쓰면 지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알 수 없으니 글쓰기가 숙제처럼 느껴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이 주인공인 만큼 상상하는 과정도 신이 나지요. 주제 같은 건 생각하지 마세요. 글이 막히면 지금 창밖의 날씨나 내가 방금 먹은 끼니를 묘사해 보세요. 그 날씨에 그 음식을 먹은 내 최애 유명인을 떠올려 보세요.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뭉게뭉게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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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신인 '이야기하기'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상상하면 거창한 이유는 하나도 떠 오르지 않습니다. 아이를 쉬이 재우기 위해서, 사냥을 끝내고 피로를 풀며 결속을 다지기 위 해서, 혹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람들은 창작을 시작했을 겁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어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묘사하다가, 내게 편안한 사람을 주인공 삼아, 가장 익숙한 성격을 부여했겠지요.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만 쓴다면 끝까지 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거창해지지 않는 것,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쓴다는 행위를 인정하는 것, 내게 익숙한 현실 속 상황과 사물들을 찬찬히, 조용히 돌아보고 소중한 재료로 여길 줄 아는 것. 바로 그게 자연스러운 첫 문장의 비결이자 쉽고 재미있는 소설 쓰기의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쇼트트랙 영웅 김연아의 유명한 짤을 아시나요? '스트레칭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라는 다큐 제작진의 질문에 김연아는 대답하죠.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그겁니다. 소설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키보드 앞에 앉아서, 비장함도 예술혼도 없이 내게 가깝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줄세워보는 겁니다. 줄선 그것들을 가감없이 기록하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 음, 물론 예술적인 소설 쓰는 분들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씁니다. 

독자로서의 저는 별로인 소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않고, 반면 마음에 쏙 든 소설은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염불하며 물고 빠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방법론으로 쓰인 자연스럽고 소탈한 소설을 제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리가 없지요. 그러니 여러분, 혹시 이 글을 읽고 그 궤도를 따라 소설 한 편을 완성하셨다면 꼭 제게 보내주세요, 저는 꽤 충성스러운 영업맨이기도 하거든요. 제 소개에서도 썼지만 등단 절차도 공모전 당선도 없이 그저 제 근본 없는 소설을 좋아해준 영업맨들의 애정에 기대어 여기까지 활동을 이어온 사람 으로서,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도 팽배합니다. 그러니 보여주세요, 당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저는 제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쓰며,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P.S. 지금은 곱창집에서 태블릿을 펼쳐놓고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밖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군요. 벚꽃은 어떤 대단한 미적 목표를 가지고 피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게 핵심입니다. 

개화를 응원합니다.